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영구존치 결정을 염원하는 세계시민들의 요청서
** 평화를만드는여성회도 연명했습니다.
우리는 독일 베를린 소녀상 철거 압력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미테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 결정을 요청합니다!
지난 4월 28일 일-독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는 독일 숄츠 총리에게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이로부터 10여 일 후 한국 대통령 취임식인 5월 10일에서야 일본 산케이신문 단독 보도로 알렸다. 한 나라의 총리가 다른 나라의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시민들이 설치한 소녀상 철거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다음날인 5월 11일,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상이 계속 설치돼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취지로 독일 측에 협력 요청했음을 재확인했다. 마쓰노 장관은 “계속해서 다양한 관계자에게 접근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끈질기게 설명하고, 동상의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겠다"고도 했다.
6월 14일 산케이신문은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바로잡기 위해 결성된 한국 시민단체가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소녀상 철거 시위를 위해 독일 수도 베를린을 방문”한다면서 “기시다 총리에게 뜻밖의 지원군이 나타났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단체는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이우연 『반일종족주의』 공동 저자,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등이 주도하고 있는 ‘위안부사기청산연대’(22.1.6 결성)다.
이 단체의 핵심 인사들은 2019년 말부터 수요시위 현장 바로 옆에서 반대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1992년 1월부터 30여 년간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고 있는 수요시위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장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기억·인권·교육의 장이다. 반대집회를 하고 있는 이들은 여성 혐오적 언동,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과 참가자 명예훼손을 지속적으로 자행하면서 ‘위안부는 사기,’ ‘성노예는 없다,’ ‘소녀상 철거’ 등을 주장하는 등 일본 극우 역사부정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행위로 인해 평화로운 수요시위 방해와 피해자 및 참가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 2022년 1월 긴급구제 결정을 내려 이들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 개입을 권고한 바 있다.
한국 시민들은 일본 정부와 국내외 극우 역사부정론자들이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는 상황에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홀로코스트 가해자들과 부정론자들이 피해 당사국의 극우 시민들과 결탁해 홀로코스트 기념비 철거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경험뿐 아니라 지금도 만연한 전시 성폭력의 현실을 전 세계 시민들이 기억하고, 다시는 이 땅에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행동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계급차별과 전쟁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성폭력 근절을 바라며 과거를 통해 배우고 평화를 공고히 하려는 세계 시민들의 노력과 염원의 상징이다.
이제 소녀상이 설치된 공간은 평화와 인권의 상징, 소수자·약자의 연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성폭력에 반대하고 여성 살해에 대항하는 공간, 원주민과 유색인종 등이 함께 모여 인종차별과 혐오범죄에 반대하는 공간, 탈식민주의 투쟁을 기념하는 민주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2020년 9월 설치 직후부터 온갖 시련을 견뎌왔다. 독일의 한국 교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주도와 베를린 시민들의 힘으로 설치됐지만 미테구청은 일본 정부의 항의와 우익들의 공격에 설치 2주 만에 철거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에 한국 교민뿐 아니라 독일의 많은 시민단체가 함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나섰고,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시민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독일 슈뢰더 전 총리도 “잔인한 폭력의 희생자로 고통받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저버리는 반역사적 결정”이라 비판했다. 이후 미테구 의회는 소녀상 영구 설치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미테구청으로부터 1년 단위로 설치 연장 허가를 받고 있어 자칫 철거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한편, 출범 전부터 역사문제와 안보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그랜드 바겐,’ ‘포괄적 해결,’ ‘톱다운 방식’을 공언했던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피해자 중심의 원칙을 저버린 정치적 합의인 ‘2015 한일합의’를 복권시키고, 안보동맹을 빌미로 또 다른 정치적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 압력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외교부 장관 기자회견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된 ‘2015 한일합의’는 일본 정부의 애매모호한 유감표명, 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10억 엔, 화해치유재단 설립을 대가로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협조, 국제사회에서 비난·비방 자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한국 정부가 약속해 준 정치적 합의였다. 비공개를 전제로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 제3국 기림비 문제, ‘성노예’ 용어”에 관한 이면합의까지 담겨있는 일방적 합의였다. 피해자들이 30여 년 간 외쳐온 범죄사실 인정,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가해자 처벌, 기억·기념, 역사교과서 기록 등 재발방지책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 왔던 일본 정부는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한국을 방문한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 파비안 살비올리는 6월 15일 출국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제3국(일본)’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및 인도에 관한 법 위반’임을 명시하고, 관련국들이 기록 공개 등 피해자들의 진실 접근권을 보장하고, 진실, 책임, 배상, 추모를 위해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피해자의 동의 없이 체결되어 진실, 정의, 완전한 배상에 대한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던 ‘2015 한일정부간 합의’의 개정을 여러 차례 국제인권기구가 호소해 왔음을 다시 상기하면서,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의 효과적이고 긴급한 대응을 촉구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일 간의 문제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등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의 상징이자 세계 시민이 함께 해결해야 할 보편적 여성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에 널리 인식되어왔다. 만약 이대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된다면 ‘한일 갈등’의 상징으로만 기억될 것이며 상상하지 못할 고통을 입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존재는 다시 어둠 속에 묻힐 것이다. 나치 범죄를 직시하고 인정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노력해 온 독일의 역사에도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우익의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압박에 굴하지 않고 전시 성폭력 근절과 피해자 인권 보호 및 명예 회복을 위한 길에 계속 매진해 나갈 것이다. 평화와 인권을 향한 전 세계 시민들의 발걸음에 독일 미테구청도 함께 하리라 믿으며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하나. 일본 정부와 극우 역사부정 세력의 철거 압박에 굴하지 말고 평화의 소녀상을 적극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
하나.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 결정을 통해,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주의자들, 역사부정 세력들에게 역사적 진실과 마주해 온 독일 시민들의 역사와 흔들림 없는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줄 것을 요청한다.